#2021.12.14
#1.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기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을 만난다. 조직문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서 새롭게 불러온 분도 계시고, 일의 진정성과 의미보다는 (이미 너무 지쳐서)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분, 열정이 넘치고 넘치는 분 등등
이번 프로젝트로 내가 만난 클라이언트는 조직문화, 조직개발 쪽으로는 아예 생각해본 적도, 이런 쪽에 아이디어를 가져본 적도 없는 분이셨다. 서면으로 보고할 수 있도록 자료를 잘 정리하여 공유를 드려도 본인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칼같이 잘라서 피드백을 주고, 엉성해진 기획안을 위에 보고를 올리면 다시 까여서 초기 내가 제안했던 안으로 돌아오는 경우들이 많았다. 이것이 왜 반복될까.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담당자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이 일 말고도 정신없이 '쳐내야 하는' 채용과 각종 업무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조직문화는 일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이 큰 일을 맡아서 진행하려니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을까. 내가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하여도 담당자 본인이 이해가 되지 않고, 목적과 방법, 그리고 그것의 효과를 본 적도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입장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화도 났다. 이 조직의 문화가 일의 비효율성에 대한 목소리가 매우 높았는데 그것을 프로젝트하면서 나도 체감하고 있노라니. 프로젝트로 일을 할 때, 이들의 입장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한발자국만 앞서 가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여러가지 일정에 쫓겨서 제대로 설명해드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못했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나도 클라이언트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많다. 그들의 언어로, 담당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소통해보려고 노력해보자.
#이직에 대한 고민
지금의 회사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회사이다. 나의 미래에 대해 기대를 하거나 비전을 주지는 않았고 다만 그냥 있어줄 뿐이었다. 누군가를 내보내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있을 사람은 있고, 갈 사람은 가고 그런 회사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간에도 감사하게도 스카웃 제의들은 있어왔지만 어딘가로 옮겨서 또 적응하고 하는 과정이 힘들고 버거워서 그냥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성장을 고민하고, 나의 역할을 고민하는 기점이 되니 나도 기대를 가지고 회사를 세워가고 싶고,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회사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직이 너무 커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곳이거나, 기반이 이곳보다 더 없어서 다시 스타트업을 경험해야 하거나. 중간이 없다니 놀라운 일이다.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다 만족시키는 곳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찾는 것일까.
앞으로 내 인생에서 10년 정도 기간이 가장 높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시점에 온 것 같다. 이를 대비하여 스스로도 너무 가치절하 되지 않고, 또 스스로가 너무 자기를 높게 평가하지도 않는 겸허함을 가지고, 내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조직을 만나고 싶다. 좋은 조직을 만들어 보고 싶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너무 안 알아주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공이 돌아가면 스스로 낙심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욕구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에 집중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첫 번째로 일 자체의 즐거움을 잃게 된다. 목적이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이니 인정 받기 위해 일을 하고,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인정을 못받으면 일 자체에서의 성과나 즐거움이 있어도 불행해진다.
두 번째로 스스로가 피폐해진다. 누군가에게 양동이가 있는데 스스로 충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인정으로 이 양동이를 채우려고 하면 주의가 외부에 향하게 되고 스스로는 굉장히 조급해지고 쪼잔해지기도 한다. 외부의 인정은 기대효과 중에 하나인 것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내 물 양동이는 채워질 수 없다.
세 번째로 크리스찬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 일을 왜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일터에서도 동일하게 임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받는 인정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인정이 더 귀하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귀하다.
내가 이번주 꺠달은 가장 큰 배움은 이것인데, 늘상 떠올리면서도 지키지 못했던 나의 깨달음이기도 했다. 아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것, 이해하는 것을 넘어 깨닫는 것(aware). 이것이 지각의 3단계라고 하는데 이제야 조금씩 3단계로 넘어오는 것 같다. 삶으로 살아내면서, 또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성령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면서. 아직도 성숙하지 않은 어른이지만 정말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한해의 정리, 그리고 새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