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무의미성]
은호와 식탁에 앉으면 이런 저런 토론을 많이 한다. 읽은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성경 묵상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소소하게 드는 의문이나 고민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식탁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대화의 자리, 열린 자리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감사하다.
작정하고 나눈 주제는 아니었지만, '비교'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성경의 비유로,
"일할 곳이 없어 일할 곳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꾼들에게 주인이 나타나 일할 곳을 주고 약속했던 품삯을 주었다. (정확한 말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이슈가 생긴다. 좀 더 오래 고생하며 일한 일꾼과 온 지 얼마 안되어 일을 조금한 일꾼과 품삯이 같은 것이었다. 이 때 오래 고생하며 일한 일꾼은 불만을 제기한다. 왜 나는 더 일을 많이 했는데 이제 막 온 사람과 품삯이 같습니까?"
이의를 제기한 일꾼은 공정하지 않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이었다. 불과 오늘 아침만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나를 부르는 곳이 없나 간절하던 일꾼이 일의 노동량에 비례하는 보상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천국에 갈 때 평생 달려갈 길을 다 싸우고 선한 싸움 싸우다 가는 사람하고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은 사람을 비교한다고 하자. 나도 맘껏 내 맘대로 놀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믿고 구원받았으면 좋았을텐데 아 억울하다, 그런 사람과도 같다. 부르심은 은혜였다는 것과 나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신 것을 잊어버리고 고개를 돌려 비교해보니 세상 억울한 그 일꾼.
비교는 끝이 없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면 선교한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비교하면 또 어떤가. 비교를 한다는 것은 우월감 또는 좌절로 안내한다. 불행한 상태가 된다.
다시 일꾼으로 돌아가서, 일꾼은 자신이 노동한 것에 대하여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의 생각인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의 비유에서 노동한 만큼(이 마저도 상대적이다) 품삯을 받아야 한다는 기준도, 그 결정도 일꾼이 했다. 일꾼은 '내 생각, 내 정답, 내 방식'이 옳았고, 아무 일이 없어 간절히 일을 구하던 나의 시작을 잊었다. 나는 이 일꾼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정말 공정하지 않아, 정의롭지 않아.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점은 공정하다 그 자체보다 비교의 무의미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나에게 자신의 경주가 있고, 부르심이 있다. 우리가 옆의 사람을 비교하는 순간,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은호의 말처럼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지 않으셨다. 말씀 어디를 보아도 세상을 향한 사랑,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만을 향한 스포트라잇을 켜고 계신다. 베드로가 요한을 시기하고 계속 비교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사명을 일깨워주시고, 다른 사람 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
이 비교하는 마음이 어쩌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자꾸 내 옆으로, 뒤로 눈이 돌아가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기보다 저 사람은요? 그게 더 궁금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조직을 경영한다면 이 공정의 늪, 비교의 늪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의 사명을 발견하고 공동체로서 합력하여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나 스스로도 은혜를 잊지 말고 비교의 무의미성을 깨달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맞추고 내게 주어진 경주를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하면서 잃게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켜가자.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삶을 살자. 나의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휘청거리며 흔들릴 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가자.
"비교하며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살아가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비교하며 살아온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