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달: 생각노트

워크숍을 하다보면 촉진이 참 어려운 참여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기록이나 결과물을 자칫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진행하는 활동들이 대화를 돕는 도구이기 보다는 채워야 하는 '과제'로 힘겨운 워크숍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처음 설계했던 장면이 

실재적으로 그대로 구현되기는 어려울 수 있으므로

우리는 목적과 결과물이라는 푯대를 중심으로 참여자의 역동을 유연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의 QT는 

중간중간 워크숍의 역동과 에너지의 부정, 긍정적 흐름에도 

끝까지, 마무리까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떻게 워크숍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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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그룹의 역동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룹 역동은 워크숍에서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잘 다루어가야 할 요소입니다. 

이것이 잘 살아나면 워크숍도 활기와 생기가 넘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창발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역동에 당황하지 말고 끝까지 그 역동을 예의주시하면서 다루어가야 합니다. 

 

둘째로, 

중간중간 퍼실리테이터의 멘트가 중요한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활동의 의미(왜 하는 건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와 

그것을 또한 찾아갈 수 있도록 때에 따라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도와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로,

나의 설계가 혹시 점검할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목적, 결과물, 순서와 도구 등에 간과한 점은 없는지,

현재의 역동에서 어떻게 변화를 주어야 할지 빠르게 검토해보세요. 

 

다섯째로, 

여전히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것을 듣고 풀어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충분한 존중 속에서, 컨센서스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원만하게 기대하는 결과물을 결국에는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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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인다는 것은 직면한다는 것과도 유사하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지, 회피할지, 투쟁할지(변화시킬지)를 선택하게 된다.

 

변화관리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이 원리가 적용이 된다. 

대부분, 우리 개인, 그리고 조직의 이상에 따라 각자의 그림, 방향성을 갖기 마련인데 

세상은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 그것이 일치되지 않기가 매우 쉽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기대와 현재의 상태간에 격차(gap)가 있다면 

그 상태는 긴장(tension) 상태가 되고, 불안한 상태가 된다. 

 

사람은 불안한 상황을, 모호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또한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쉽고 빠르고 간결한 답을 애타게 찾는다. 

 

내가 아무 손해를 입지 않으면서, 이 상황을 벗어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조직의 생활은 한번 이 상황을 벗어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문제로 나타나거나 잠깐 숨어있다가 다시 나타나기 일쑤다. 

 

그러면 우리는 이 변화와 다름의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다루어가야 할까?

 

먼저 눈을 들어서,

눈 꺼풀을 덮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우리가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파악하거나 장악할 수 없고,

결코 완벽하거나(완전하거나) 실수가 없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내 맘과 내 뜻대로 다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그 신발을 벗고 맨 발로 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맨발로 서 보면 사뭇 고통이 찾아온다. 

피하고 싶고, 좋은 말로 포장하고 싶고, 때로는 주저앉아서 울고도 싶고, 화를 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이 불편한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들여다보면 

내가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다.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그것의 문제였고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택은 나의 문제였다는 것을. 

 

완벽할 수 없는 것에 완벽을 기대하고 있었거나 

다 내 맘과 같이 되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못했거나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거나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거나. 

 

이것은 챙피하거나 화가 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독여줄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바로보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그 고통을 직면하고 나면 (그 고통이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게 되면)

더이상 그 고통은 고통이 아니게 된다. 

신기하게도 여기에 자유가 있다. 

 

그리고 나면 더 깊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 

내가 연약한 나를 잘 알 수록,

농익어가는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나와 타인과 상황에도 관대해질 수 있게 된다. 

 

유시민 작가는 내가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또한 타자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어쩌면 우리 인간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들여다보고 오히려 이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는 정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또 그 외로움이 더이상 나를 메이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참여자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든지 간에,

퍼실리테이터로서, 조직개발 컨설턴트로서 

그들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고통이 더이상 고통이 되지 않도록 다음의 넥스트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그 기점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성장하는 길이고 

빠르고 쉽게 성장하는 길도 의미가 있지만 

하나하나 나의 성찰과 깊은 이해 속에 더디더라도 성장해나가는 것이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든든하게 서나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나의 현장에서, 

나는 무엇을 직면할 것인가? 

어떻게 나와 타인이 자유 속에 성장을 누리게 할까? 

그런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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