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달: 생각노트


“좋은 설계가 있다면
  좋은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요청의 시작
우리는 꼭 워크샵이 아니라도, 교육도 많이 해봤고, 이런 거 많이 보기도 했고,
우리가 원하는 이런 워크숍에 대해 설계를 잘 만들어주시고, 가이드를 잘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잘 될 것 같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설계하는가
대기업에서는 워낙 많은 참여 모수를 대상으로 다차수를 진행하다보니,
워크샵이나 교육을 ‘돌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표준적인 프로세스를 잘 만들고, 그대로 수행하면(돌리면), 동질의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가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정과 같은 기계가 아닌, 오차가 컴퓨터에 의해 조정되는 원인과 결과가 어느정도 예상되는 대상이 아닌
복잡하고 오묘한 ‘인간(human)’을 대상으로 한다.
내가 현업에 있던 10년여 전, 디자인씽킹은 DDDD 모델을 기반으로 찍어내는 겉핥기 도입에서
본질인 휴먼센터드(human centered)로의 회귀가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의 깨달음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이그룹으로 모여지면 ‘그룹 역동(Group Dynamics)’이 생겨나고
이것은 잘 활용하면 의미와 재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리스크와 이를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대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면을 바라보고, 어떻게 전환하는 시도를 해나갈 것인가?’

좋은 진행을 위해서는 좋은 설계는 필수다
워크샵은 준비가 8할이라고 할 정도로 준비를 강조한다.
특히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고, 조직개발의 이슈를 다룰 때에는 단순히 한번의 워크샵에 대한 아젠다 설계가 아니라
조직개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변화관리 측면의 전체 판의 기획이 중요한 변수이다.

전체 판의 설계와 해당 워크샵의 구체적인 설계는
인터뷰를 구성하고, 인터뷰에서부터 시작되며,
이 때에는 퍼실리테이티브한 컨설턴트의 역할로서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주요 이해관계자의 파악과 참여, 그리고 워크샵의 목적 결과를 면밀하게 협의해 나가야 한다.

좋은 진행을 위해서는 좋은 설계가 필수이다,
그러나 좋은 설계가 좋은 진행을 꼭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우리는 인간을 대상으로 그룹의 역동을 다루며,
설계가 실제 작동(working)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행할 스킬과 철학의 기반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설계를 가졌어도, 좋은 시험 답안지를 가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작동하게 하기 위한 스킬의 학습은 필수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우리의 설계가 현장에서 잘 작동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스킬없이 가져간 설계도는 진행의 미흡함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며,
자칫 설계의 미흡함으로 돌아올 수 있는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퍼실리테이션 스킬을 아직 배우지 않은 담당자라면
먼저 퍼실리테이션을 익혀보시고,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설계해가며(co-design) 고도화가는 방식을 제안해본다.
급하게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고,
시간과 예산 등의 제약으로 ‘정도’를 가기는 어렵더라도,
아웃풋과 아웃컴까지를 예측하고 이를 위한 최적화를 고민해가는 시도는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은호와 식탁에 앉으면 이런 저런 토론을 많이 한다. 읽은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성경 묵상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소소하게 드는 의문이나 고민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식탁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대화의 자리, 열린 자리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감사하다. 

 

작정하고 나눈 주제는 아니었지만, '비교'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성경의 비유로, 

 

"일할 곳이 없어 일할 곳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꾼들에게 주인이 나타나 일할 곳을 주고 약속했던 품삯을 주었다. (정확한 말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이슈가 생긴다. 좀 더 오래 고생하며 일한 일꾼과 온 지 얼마 안되어 일을 조금한 일꾼과 품삯이 같은 것이었다. 이 때 오래 고생하며 일한 일꾼은 불만을 제기한다. 왜 나는 더 일을 많이 했는데 이제 막 온 사람과 품삯이 같습니까?" 

 

이의를 제기한 일꾼은 공정하지 않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이었다. 불과 오늘 아침만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나를 부르는 곳이 없나 간절하던 일꾼이 일의 노동량에 비례하는 보상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천국에 갈 때 평생 달려갈 길을 다 싸우고 선한 싸움 싸우다 가는 사람하고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은 사람을 비교한다고 하자. 나도 맘껏 내 맘대로 놀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믿고 구원받았으면 좋았을텐데 아 억울하다, 그런 사람과도 같다. 부르심은 은혜였다는 것과 나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신 것을 잊어버리고 고개를 돌려 비교해보니 세상 억울한 그 일꾼.

 

비교는 끝이 없다.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면 선교한 믿음의 선진들과 나를 비교하면 또 어떤가. 비교를 한다는 것은 우월감 또는 좌절로 안내한다. 불행한 상태가 된다. 

 

다시 일꾼으로 돌아가서, 일꾼은 자신이 노동한 것에 대하여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의 생각인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의 비유에서 노동한 만큼(이 마저도 상대적이다) 품삯을 받아야 한다는 기준도, 그 결정도 일꾼이 했다. 일꾼은 '내 생각, 내 정답, 내 방식'이 옳았고, 아무 일이 없어 간절히 일을 구하던 나의 시작을 잊었다. 나는 이 일꾼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정말 공정하지 않아, 정의롭지 않아.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점은 공정하다 그 자체보다 비교의 무의미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나에게 자신의 경주가 있고, 부르심이 있다. 우리가 옆의 사람을 비교하는 순간,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은호의 말처럼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지 않으셨다. 말씀 어디를 보아도 세상을 향한 사랑,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만을 향한 스포트라잇을 켜고 계신다. 베드로가 요한을 시기하고 계속 비교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사명을 일깨워주시고, 다른 사람 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 

 

이 비교하는 마음이 어쩌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자꾸 내 옆으로, 뒤로 눈이 돌아가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기보다 저 사람은요? 그게 더 궁금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조직을 경영한다면 이 공정의 늪, 비교의 늪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의 사명을 발견하고 공동체로서 합력하여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나 스스로도 은혜를 잊지 말고 비교의 무의미성을 깨달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맞추고 내게 주어진 경주를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하면서 잃게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켜가자.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삶을 살자. 나의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휘청거리며 흔들릴 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가자. 

 

"비교하며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살아가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비교하며 살아온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세요." 


22년 설날, 부모님과의 대화 중에 어머니께서 서울성모병원 김미란 산부인과 교수님과 한 상담분야 교수님의 강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의료 종사자들이 많은 외가댁의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하는 일이 의사의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더 반가운 마음으로 들었다.

상담학 교수님은 영어 성경을 보면 “기모, 모사” 부분이 영어로 “wonderful conselor”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상담이 하는 일은 그의 마음에 가지고 있는 짐, 두려움을 거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했다. 복잡한 사람의 마음에, 누구나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이 무엇으로 인해 막혀있다면 그것을 상담을 통해 발견하고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스스로 그 일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랬을 때 삭개오를 보면, 예수님을 만나 기쁘게 돌아가는 변화가 나온다. 주변 사람들도 그에게 조언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진짜 변화는 그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에서 시작되었고, 마음 상태의 변화로 보면 “기대, 두려움, 걱정 등에서 기쁨으로”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김미란 산부인과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명의 신비를 발견한 인턴 시기 이후, 이 분야에서 생명을 낳는 자궁의 건강을 위해 한평생 이바지하리라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수술에 욕심이 많아서 오른손 잡이인 자신을 왼손으로 밥 먹는 등 양손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매번 정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와 수술을 임할 때 매번 전쟁에 임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한다. 스스로가 유방암 2기로 절망스러운 시기에도 환자들의 대혼란이 생기는 상황이라 진료를 조금 축소하여 계속 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내가 경험해보니 이것을 통해 환자들을 좀 더 이야기하고 0기, 1기 사람들에 대하여 절망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게 되었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 과정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등 보완해서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걱정과 근심으로 수술전에 가득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수술이 잘 마친 후 너무나 밝아지는 표정을 볼 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컨설턴트이자 퍼실리테이터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업계에서는 강사 분류로 하여 진행하지만 나는 컨설턴트라고 말한다.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업계의 생각은 하나의 이벤트/하나의 문제해결 정도로만 보지만 사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일은 조직의 맥락, 문제에 대한 분석과 맥락 속에서 현장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당일의 진행이 아닌 전체를 보고 문제를 풀어가도록 돕는 역량에 있기 때문에 컨설턴트라고 부른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보람은 나 역시도 같다. 사람들간의 불신, 불평과 어려움 호소, 안되겠다고 절망하는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우면 그들은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그 표정이 정말 밝게 변해간다. 무언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우리 이제 이렇게 해볼까?” 또는 불평 가득하고 변화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던 표정과 언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보면 좋을까요?” 대안을 찾고 변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나는 만족도 평가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는데, 이것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도 높게 받으려고 하는 즐거움보다는 정말 그들의 문제를 풀어가는 물입과 즐거움, 관계의 회복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 아닐까. 그때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감사와 기쁨을, 그로 인해 나에게 감사의 한마디를 전해주시는 것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큰 영광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발 뼈에 금이 간 지도 모르고 좋다고 말하고, 그런 환자에게 걸어다니라고 한다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그로 인해서 그의 생계, 삶의 질 등이 크게 악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의사가 만약 그저 많은 환자 중에 한명, 좀 더 진지하게 엑스레이를 살펴봐야 하지만 대략 넘겨보고, 환자가 하는 경험의 언어를 흘려듣고 잘못 진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조직개발을 한다는 것이 의사의 일과 같이 생명의 죽고 사는 문제 만큼의 엄중함은 아닐 수 있지만, 그만큼 일상의 중대한 것이라는 것과는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출근하고 하루의 절반이상의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는 일터에서, 사람들이 일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진단 상 죽음이 아닐 뿐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다루어야 하는 대상은 조직, 개인, 개인간의 그룹 등 역동과 복잡성이 모여있는 곳이니 어쩌면 답이 없는 더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매일의 삶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복잡계같은 조직 생활 속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그렇게 개인의 삶의, 조직의 안위에, 업계와 고객들에게, 사회와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상담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정말 행복을 발견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간 것과 같이, 진료를 통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밝은 희망의 표정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던 것과 같이, 이 일을 통하여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건강을 잘 살피고 지혜를 늘 구하며 내 일에 임하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외부 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의 순간의 변화를 보았지만 진정한 변화로 이끌어가는 것을 보지 못할 때의 절망감 또한 들었던 것에서, 나 역시도 하나의 이벤트로 보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선택은 고객이 하겠지만)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바람직한 파트너로서 팀을 이루어 만들어가고, 사람의 마음에 두신 긍정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매 순간 감사의 걸음걸음을 걸어가고 싶다.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면서 적어서 두서 없이 적어두었지만 이 일에 대한 나의 사명을 잊지 않고 살아가리 하는 마음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