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달: 생각노트


2022년 1월 새해 첫날의 글은
그동안 근2년 동안 나의 논쟁의 삶을 지나오며 지금까지 나의 결론을 적어본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아니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내가 벌써 몇 번을 말하고 또 말해줬는데 필요하냐고 하면 아니라고 하고, 자꾸 모르겠으니 다시 필요하다고 하고. 아, 이제는 참는데 한계가 있네!”
“어떻게 윤리적으로 가짜인 것을 알면서 우리를 믿어주는 클라이언트에게 가짜를 쓰겠다는 거지?”
“이 기준이 왜 저 사람에게는 가하고 나는 가하지 않다는 거지? 저 어정쩡한 설명은 왜 변명같이 들리지?”
“내가 시간 없는 중에 급하게 제안서를 도와주려고 한 것과 기본을 모르는게 아니라는 걸 아실텐데, 내 좋은 의도를 무시하고 왜 공개적으로 지적을 하지? 나는 지적을 못해서 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왜 내 의견을 듣고 결국 자기 의견만 말하고 자기 의견으로 결정을 내리지? 몇번을 이야기했어도 자꾸 몰랐다고만 하고 개선은 안되지?”

아무리 내가 한 말이 옳았어도 나는 지극히 감정적으로 화난 상태에서 대응을 했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내가 억울했고(내가 나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이다, 내가 대우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불공정하다) 상대방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것- 대부분 팩트를 가지고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라면서 논쟁을 이어갔다.

이런 경우 내가 한 팩트가 정말 맞는 말이라도 상대방은 방어적으로 대화를 했고, 그냥 웃으면서 넘기려고 하거나 내가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유를 몰라 하거나 온갖 방어를 하다가 그래 내가 잘못은 했는데 나도 이유가 있어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그동안의 정서가 어떠했든 그와의 관계는 몹시 서로 불편해졌다. 나는 여전히 팩트와 진실의 한 면을 붙잡고 잘못과 불공정을 바로 잡는다고 정의감을 불태웠다고 생각했지만 이 대화는 불필요한 논쟁이었다는 점과 내가 아무리 팩트와 진실을 말해도 이 대화에서 팩트와 진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점과 누군가 이 대화에서 이겨도 진것이라는 윈루즈 대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명백하게 상대가 틀렸다라는 판단과 눈빛과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을텐데 나는 무엇을 위한 논쟁을 했던 것인가.

팩트와 윤리, 서로 합의했던 것이 있다면 충분히 서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사안에 있어 나를 변호하거나 누군가를 변호하여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화의 의도가 내가 맞고 너는 틀렸고, 그것을 인정해야 끝나는 이 무시무시한 논쟁의 늪에 들어왔다면 나는 빨리 깨어서 그 늪에서 나오라고 말하고 싶다. 이겨도 지는 그런 논쟁에의 늪에 빠진 것이라고.

누가봐도 명백하고 옳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늘 옳지는 않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리와 진실을 상대방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내가 심판자가 될 필요는 없다. 내가 심판자가 되라고 이 곳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라고 이 곳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아니 나의 옳음에 대하여 내가 정당하게 방어할 수 없는가?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이 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 그러나 이 대화는 나중에 지나고 나면 그 정당하고 논리적인 논쟁에 남는 것 뒤에는 사람을 잃고 나도 잃는다는 것임을. 그리고 이것은 내가 죽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진정으로 내 삶에서 깨닫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랑이 없는 빈 소리나는 꽹과리 요란했던 삶을 돌아보며 나는 새해 첫 날, 민지 언니의 편지를 읽으며 하나님 앞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살기를, 지혜롭게 말하고 대화할 수 있기를, 내 힘으로는 이 조차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성령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한 해를 시작한다. 올 한해의 나의 옳음을 인애와 공의의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사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한다.🙏🙏